언어가 사라지는 정확한 순간을 날짜로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우비흐어는 그 예외다. 1992년 10월 7일, 마르마라해 남쪽 터키 마을 하즈오스만에서 88세 농부 테브피크 에센치가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100여 년 전까지 캅카스 흑해 연안에서 수만 명의 일상어였던 언어의 마지막 완전한 화자였다.
우비흐어는 북서캅카스 어족에 속하며, 압하스어, 아바자어, 아디게어, 카바르드어와 형제 관계에 있다. 본래의 고향은 지금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 주변의 좁은 해안 지대였다. 1860년대 제국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 이후, 우비흐 인구 거의 전체가 흑해 너머 오스만 영토로 강제 추방당했다 — 지금은 무하지르(망명) 비극으로 기억된다. 아나톨리아의 흩어진 마을에 정착한 공동체는 세대를 거치며 터키어와 체르케스어로 옮겨갔다. 1900년경 우비흐어는 이미 가정 내 유물이었고, 1950년경에는 노인 몇 명의 말이 되어 있었다.
언어학적으로 우비흐어를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그 음소 체계다.
- 음소 자음 84개. 인두음화, 순음화, 구개음화, 방출음 — 자음 계열을 늘릴 수 있는 모든 매개변수를 우비흐어는 사용했다. 출판된 집계는 81에서 84까지 오가지만, 가장 낮은 수치도 코이산 외 어떤 언어보다 높다.
- 음소 모음은 둘뿐. /ə/와 /a/뿐이며, 때로는 주변 자음이 색을 결정하는 단일 기저 모음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모음 간 대립은 사실상 거의 일하지 않으며, 자음이 모든 것을 떠맡는다.
- 다인칭 동사 형태론. 단일 우비흐어 동사가 주어, 직접목적어, 간접목적어, 위치, 방향, 도구, 수혜자 논항을 하나의 빽빽하게 쌓인 단어 안에 부호화할 수 있다 — 북서캅카스 친척들과 공유하는 구조적 특징이다.
20세기 우비흐어에 관해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프랑스의 인도유럽어 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 조르주 뒤메질 덕분이다. 1930년부터 그는 사라져 가는 공동체를 기록하기 위해 아나톨리아를 반복해서 방문했고, 거의 60년에 걸쳐 해마다 돌아왔다. 그는 문법 기술과 텍스트 모음집을 잇따라 펴냈다 — Documents anatoliens sur les langues et les traditions du Caucase 시리즈(특히 제3권 Nouvelles études oubykhs, 1965)를 포함하여 — 그 자료는 지금도 기초가 된다. 1960년대에 에센치는 뒤메질의 주된 자문자가 되었고, 두 사람은 1986년 뒤메질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일하고 서신을 주고받았다.
"테브피크 에센치 — 그의 영혼을 위해 파티하를 읽어 주시기를 — 우비흐어를 불멸케 한 사람, 이 언어를 쓰고 말할 수 있었던 마지막 우비흐인." — 에센치가 직접 구술한 터키어 묘비명
에센치는 자신의 역할을 비범한 명료함으로 이해했다. 속담, 노래, 기도, 지명, 민담을 일부러 기억해 두어 녹음될 수 있게 했다. 그 말을 새긴 비석은 하즈오스만 마을 묘지에 서 있다. 새겨진 것은 우비흐어가 아니라 터키어다. 표준 참고 사전 Dictionnaire de la langue oubykh(1963)를 펴낸 것은 노르웨이 음성학자 한스 포크트였고, 네덜란드 언어학자 릭스 스메이츠는 20세기 말까지 기록을 이어갔다. 그들의 작업은 뒤메질의 텍스트 편찬과 함께 이 언어의 자료적 토대를 이룬다.
오늘날에도 터키, 요르단, 미국에 소규모의 우비흐계 사람들이 녹음을 공부하고 제한된 부흥을 시도하며, 체르케스 연대 단체를 통해 정체성 의식을 유지한다. 그러나 84개 자음과 빽빽한 동사 형태론을 가진 기능적 유창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비흐어는 가까스로 제때 포착되어 기술되었지만, 결국 잃어버린 언어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