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 제도의 라고메라섬은 깊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협곡(바랑코)들로 새겨져 있다 — 협곡 너머로 보이는 이웃이라도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일 수 있을 만큼 가파르다. 휴대전화가 등장하기 한참 전, 고메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휘파람 언어 중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바로 실보 고메로, "고메라의 휘파람"이다.
실보는 암호도, 일련의 신호도 아니다. 이는 완전히 분절된 스페인어의 한 어역(register)이다. 원리적으로 어떤 스페인어 단어든 휘파람으로 옮길 수 있고, 능숙한 실바도르는 날씨, 가축 시세, 어젯밤 축구 경기까지 자유롭게 대화한다. 비결은 스페인어의 풍부한 모음·자음 목록을 훨씬 작은 음높이 제스처 집합으로 줄이는 것이다.
- "모음"은 두 개 — 높은 음이 스페인어의 /i, e/를, 낮은 음이 /a, o, u/를 담당한다.
- "자음"은 네 개 — 휘파람이 끊기는지 이어지는지, 그리고 다음 모음으로 음높이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로 구분된다.
- 리듬, 강세, 억양은 분절 정보보다 더 충실히 보존된다. 듣는 사람은 맥락으로 빈 부분을 보충한다 — 전화선 품질이 나빠도 통화가 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이 기술은 스페인어 자체보다 오래되었다. 카나리아 제도의 원주민 관체족은 이미 자기들 언어(베르베르 계통)의 휘파람 어역을 사용하고 있었고, 15세기 정복 이후 카스티야 스페인어가 관체어를 대체했을 때 휘파람만 새 어휘에 다시 끼워 맞춰졌을 뿐이다. 라라구나 대학교의 언어학자 라몬 트루히요는 1978년 단행본 El silbo gomero: análisis lingüístico에서 이 휘파람에 대한 표준적인 언어학적 기술을 확립했고, 이 책은 지금도 표준 참고서다.
1980년대에 실보는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다. 이민, 포장도로, 전화기가 이 휘파람을 지탱하던 목축 경제를 무너뜨렸다. 라고메라 도의회는 과감한 한 수를 두었다 — 1999년부터 실보 고메로를 섬 내 모든 공립 초등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매주 25분 정도 휘파람을 배우고, 수만 명의 학생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상당한 규모의 공동체에 의해 완전히 발달하고 실천되는 유일한 휘파람 언어이며… 인류의 문화적 창조성을 보여주는 예외적인 사례이다." — 유네스코 등재문, 2009년
신경과학자들도 주목했다. 라라구나 대학교의 마누엘 카레이라스 연구팀이 2005년에 수행한 fMRI 연구는, 숙련된 실바도르가 실보를 처리할 때 일반적으로 음성 처리에 쓰이는 좌반구 언어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실보를 배운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휘파람을 들려주어도 그 언어 영역이 반응하지 않았다. 즉 뇌는 실보를 음악이나 새소리가 아니라 언어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이 한 편의 결과가 실보를 "민속 호기심"에서 인간 언어 능력의 유연성을 측정하는 진정한 탐침으로 격상시켰다.
실보가 살아남은 유일한 휘파람 어역은 아니다 — 터키의 쿠시쾨이, 흐몽족(몽족)의 구애 휘파람 관습, 오악사카의 마자텍어 휘파람, 윈난의 아카 휘파람 성조 등이 모두 모어와 공존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대표목록에 등재된 휘파람 언어는 실보 고메로뿐이며(터키의 쿠시쾨이 휘파람은 2017년 긴급보호목록에 등재되었다), 제도화와 문서화의 정도에서도 단연 앞선다. 라고메라의 능선 길에서 매우 수다스러운 새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면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보라. 누군가 사촌에게 가게에서 무얼 사 오라고 부탁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